불모지대를 읽고 - 회사와 권력 그리고 세계속의 암투
불모지대(不毛地帶) - 야마사키 도요코
장장 5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불모지대를 틈나는 대로 숨가쁘게 읽었다.
한권 한권이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 사이즈의 분량이다.
겹겹이 쌓아놓고 보니 높이가 제법!
컥 !
하지만,언제 다 읽나? 걱정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술술 잘 읽혀 예정보다 빨리 완독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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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읽은 책인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책의 소재나 시대상등이 한국 사람이 껄끄러워할 부분이 꽤나 있었지만, 좋게 받아들인 점도 그 못지 않게 있다.
그보다! 생각보다 오타가 많다! 부디 꼼꼼히 수정해서 재 발행해주시길!!!
그럼 책에 대한 좀더 자세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불모지대는 일본의 여류작가 야마사키 도요코가 1978년에 발표한 소설로 우리나라에 1983년 출판사 청조사가 전집을 출판했다.
소설가 야마사키 도요코는 너무나도 유명한 김명민 주연의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의 원작자이다.
불모지대는 실존 인물 세지마 류조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소설에는 이키 다다시라는 인물로서 등장하는데, 이 세지마 류조라는 인물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사람이다.
세지마 류조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육군대학(우리의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2차 세계대전(러.일전쟁, 태평양 전쟁)에 일본 전시 최고 사령부인 대본영에서 작전 참모로서 전쟁 작전을 수립하고 지휘했다. 종전 후에는 소련의 포로가 되어 11년의 억류 생활을 하였으며, 귀국한 뒤에는 이토추 상사에 촉탁직으로 입사하였다. 섬유만 팔던 이토추 상사를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로 키워내고 10년의 회장직까지 맡으며 종합상사에 군대의 참모조직을 접목시킨 타고난 인물이었다.
또한,정.재계에 화려한 인맥과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 막후의 실력자였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육사 선배로서 1965년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전두환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어 십수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쿠데타로 일으킨 정권의 불안정성을 올림픽 개최를 통해 타개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참으로 씁쓸한 입맛이 든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과도 인연이 돈독하였다고 하는데, 이 불모지대란 책이 출판되었을때 이병철회장은 전 임직원에게 책을 읽고 레포트를 제출하라 지시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세지마 류조-> 이키 다다시로, 이토추 상사-> 깅키상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책의 줄거리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인 감상을 쓰고자 한다.
1.소설의 방대한 스케일에 놀랐다.
소련의 포로 생활부터 킹키상사의 일본 배경, 그로 인해 벌어지는 미국과 이란, 한국 등의 국가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30년의 긴 시간을 장대하게 담아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거대한 서술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하는 것은 섬세한 묘사였다. 작가님이 얼마나 사료와 자료를 수집했는지 느껴지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가령, 시베리아 포로 생활에서의 지역적인 특색이나 기후 그리고 시대에 맞는 서술, 미국의 뉴욕,샌프란시스코,디트로이트등에 대한 묘사, 이란 지역의 상세한 묘사등이 그랬다.
2.좋았던 점
허구를 쓰는게 소설이고 문학이지만, 마치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일본의 상황과 그 후 시베리아에 억류된 포로들의 10여년의 생활, 종전 후 일본 경제에 깅키 상사를 통한 1차 중동 전쟁과 오일 쇼크, 석유를 둘러싼 입찰과 이권 다툼, 미국 전투기 도입과정, 굴지의 제너럴 모터스와의 제휴를 가감없이 긴장감 넘치게 서술한다. 또한, 상사원의 치열한 삶을 잘 보여주는데, 그에 비친 내 자신의 나태함에 경종을 울려주는 것 같아 좋았다.
3.안좋게 느낀 점
안좋게 느낀 점이라기 보다는 불편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입장에서 단지 패한 것이 원통하고, 패했기 때문에 지독한 포로 생활의 암울했던 운명을 맞게 됐다고 억울해 하는데, 그 제국주의에 무참히 짓밝힌 대한민국의 독자인 나로서는그런 불편한 시각이 거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설의 상황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그리고,마지막 결말 부분도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아키츠 지사토와의 관계와 다이몬 사장과의 관계가 완전히 매듭져지지 않고 흐지부지된 것 같아 그랬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처럼 불모지대도 초반부에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책장이 넘어가면 숨 쉴 틈없이 속도감이 붙는다. 불모지대를 통해 많이 배우고 시야를 더욱 넓게 가져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